가시적 분노
[La Haine : 증오]
불타는 화염병이 나타나 지구를 불 태운다. 곧 이어 프랑스의 격렬한 시위장면이 등장하고, 그들의 분노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무엇이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는가.
영화 <증오>는 프랑스 정부가 이민자 차별 법안을 통과 시켰을 때를 배경으로 한다. 법안은 지극히 차별적이었고, 이 법안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 프랑스 내 이민자들은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시작하게 된다. 한 나라의 시민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그 작은 욕구와 움직임은 시위 도중 시리아 출신 이민자 청년이 경찰에 의해 사망하게 되면서 분노로 뒤바뀐다. 시위대를 향한 불합리한 처사는 계속 되고, 분노는 점점 더 거세진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유대인, 아랍 출신 이민자, 흑인으로 이민자 처벌법에 의해 즉각 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비주류 시민들이다. 이들의 생존을 위한 분노가 이 영화의 시발점이며, 감독이 표출하고자 하는 불합리의 가시화이다.
간혹 시위의 폭력성은 제 3자에 의해, 아니 오히려 당사자들의 의해 더 비난 받기도 한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은 그저 언급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구조는 당장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선 당연하게도 그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에는 관심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시위는 자극적이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프랑스의 시위는 자극적이다. 시위대 손에 주어진 총 한자루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불안과 더불어 불쾌감 또한 느끼게 한다.
빈쯔는 스스로를 은하수에 떨어진 개미 같다 말했다. 2등 시민이 느끼는 사회는 개미가 느끼는 은하수와 같은 것이다. 너무 방대하고, 거대해서 무엇을 하면 나의 불행한 상황을 바꿀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런 개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하는가. 어떻게 모두를 이 분노에 동참시켜 콘크리트 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사회의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정답은 단 하나밖에 없다. 눈에 띄어야한다. 조금 더 자극적일지언정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 말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미 만연한 2등 시민을 향한 증오, 변화의 희망, 선택지가 단 둘 뿐이라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로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이렇게 폭력적이게 만들 수 있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프랑스 내의 이민자를 향한 차별을 가시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어떻게 추락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떻게 착륙하는 지가 중요하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 문구는 영화 밖 현실의 끝에선 올 곧은 세상을 마주하길 바라는 감독의 욕구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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